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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도시의 발달 2편

by find-memo 2026. 1. 13.

고대의 도시 발달

1. 그리스 시대의 도시 발달

그리스 지역은 본래 해안선이 복잡하고 산악이 많아 아름다운 자연풍경에 둘러싸이고, 큰 강이 없어 각 지역이 지리적으로 분립하여 각각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농촌을 지배하는 지주들은 현지의 경작을 노예에게 위임하고, 자기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에 모여 거주지역을 형성하면서 종교, 철학, 예술 활동을 하게 되었다, 지주들은 도시에서 시민권을 얻어 평등한 자격으로 시정에 참여하게 되어 도시는 그들의 권위를 상징하는 영광을 누리는 장소가 되었고, 또한 노예제도 하에서 잉여생산물을 모아 특권계급이 그것을 소비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도시 특권계급은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그들 상호 간에 민주적 정치참여는 있었으나 그것은 다만 시민권을 가진 성년 남자에 국한되었고, 인격적 존재와 참정권이 인정되지 않은 노예의 수가 더 많았다. 도시국가 중 가장 큰 아테네시의 인구 15만 명 중 참정권을 가진 시민 수는 단지 5만 명에 불과했고, 2/3에 해당하는 10만 명은 참정권이 없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도시는 왕궁을 중심으로 한 도심 광장의 평면 형태로서 기하학적으로 정방형의 형태를 가졌으며, 개방 공간인 광장의 주변에 있는 건축물들은 주열이 있는 회랑에 둘러싸였다. 평면계획으로 광장을 왕래하는 사람들의 교역을 위하여 이동하기 편리하도록 동선을 배치하였고, 주요 간선도로는 광장을 기종점으로 하였다.

그리스 시대 이전의 초기 문명시대에도 계획된 도시의 흔적은 보이나 그런대로 대규모의 계획적 도시개발은 그리스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도시계획은 서구 도시계획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히포다모스에 의한 것인데, 그의 도시계획은 격자형 가로망을 형성하고, 건축선에 통제를 가했으며, 하수도시설의 정비에 중점을 두었다. 대부분의 도시는 왕궁을 중심으로 한 도심 광장의 평면 형태로서 기하학적으로 정방향의 개방 공간의 광장 주변에 있는 건물들은 주열이 있는 회랑에 둘러싸였고, 사람들의 교역을 위하여 왕래하기 편리한 동선을 설정하되, 주로 간선도로망은 아고라를 기종점으로 하여 계획하였다. 토지 용도는 신에게 기도하는 성지, 무사들을 위한 공용지 그리고 농민을 위한 사유지로 구분하여 토지이용 질서를 구현하였다.



2. 로마제국의 도시 발달

로마제국은 주변국을 정복하여 대토지 소유제를 확립하고 그를 토대로 군사도시 또는 식민도시를 형성하였다.  점령 도시를 주변 지역으로 하여 로마시가 성장하였는데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오랜 건설 기간을 거쳐, 기원 전후에 걸쳐 놀랄 만한 대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제정 로마의 도시들로는 로마시를 비롯하여, 아오스타, 폼페이, 팀 가드 등이 있다.

추정에 의하면 당시 로마시의 면적은 5평 방 마일이었으며, 또 인구는 20만 이상이었다고 한다. 주목할 것은 도시인구 한 사람의 생활을 지원하려면 농촌인구 70~80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과 같이 로마시는 대제국의 모든 기능의 중심으로서의 노예경제에 의한 잉여생산물을 실은 대형차가 폭이 넓고 포장이 잘 된 로마시로 향하게 되고, 동시에 노예 지배와 반란 진압을 위한 군대의 기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도시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시도 그 본질은 지배자에 의한 잉여생산물 소비도시였고, 극장, 투기장 등의 건물은 시민의 쾌락을 위한 목적뿐이었으며, 유민 부랑자가 모여 불건전한 소비와 쾌락의 상징인 기생도시로 4~5세기에 붕괴하고 말았다.

로마제국은 광장, 사원, 기타 공공건물을 세워 로마의 위세를 떨치고 주민들을 위압하였다. 도시의 면적은 20~150ha에 이르렀으며, ha당 인구밀도는 100~150인이었다. 도시 주위는 대규모 성벽으로 둘러싸였는데, 특히 북부의 게르만 민족의 침입이 잦아 성벽을 더욱 굳게 쌓았다고 한다. 그리스의 도시가 항수, 성의 건축이나 도로망이 바둑판처럼 정연한 도시 미를 자랑한 데 비하여, 로마의 도시는 그 규모가 매우 큰 도로, 상하수도 등의 웅장한 토목 시설의 건설을 자랑하였다. 도시계획가 비트루비우스에 의한 로마 도시계획의 특징은 집약적인 토지이용, 도시 기능의 분화, 기하학적 순수성을 들 수 있다.

그리스는 아고라, 로마 시대에는 대 건물군과 광장의 수가 18개소에 이르렀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급수, 배수, 난방 방법을 발전시키고 장거리 급수와 지하배수로 기술이 있었으나, 거대한 규모를 좋아하는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의 선과 형체의 정교성과 창조적 정신이 없었었다.

중세도시



3. 중세의 도시 발달

로마제국에 통합되어 있던 유럽의 각 도시 즉 라티푼디움들은 로마의 멸망과 더불어 그 지역의 통치권을 갖는 봉건영주에 의해 장원으로 바뀌면서 이를 토대로 중세의 도시가 발전하게 된다. 그 후 장원제도, 농노제도에 의한 농업이 생활의 주종을 이루고 있어, 봉건영주가 많은 영지를 가지고 사원의 문전 도시가 만들어졌다. 그 후 중세 후기에는 무역과 수공업의 발달, 화폐경제의 발달과 도시동맹 등에 의한 자치정부의 발달을 가져와 해안 도시의 발전을 촉진하게 되었다.

중세 초기를 통하여 농업기술의 향상, 사원 내의 노동절약, 용기의 발명 등으로 종교적 제사나 집회를 계기로 각 촌락 도시가 물자 교류의 장소인 상업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장의 설립과 확대, 도량형, 화폐의 보급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는 교통과 교환 등은 시장의 확대와 초기의 직인 조합을 형성하여 상인 조합의 발달을 가져왔다. 상인들은 시정회를 조직하여 봉건영주를 뒤이어 도시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무역과 상인 조합의 신장에 따라 토지가 부의 유일한 원천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화폐가 새로운 재산의 척도가 된 시대가 되었고, 노예의 강제노동, 현물 공여의 원시 경제는 현금 급부의 방법으로 바뀌었다. 길드의 영향력 증대, 화폐경제로서의 변화는 도시행정의 진보를 가져왔고, 그들은 도시의 주인으로 관리의 임명 및 재판을 진행이고 세금 등 여러 가지 의무를 주민들에게 부과하게 되었다.

성직자와 봉건영주들은 길드의 성장을 위하여 교회, 시장, 광장 등을 건설하였고, 성곽과 대성당은 국가 생명에 있어 제일 많이 중요시되어 중세도시의 중핵이 되었다, 당시 예술은 지배계급의 영광을 합리적, 의식적으로 표현하여 시민에게 위용을 과시하기도 하였고, 성곽과 대성당은 국가 생명에 있어 제일 많이 중요시되어 중세도시의 중핵이 되었다. 당시 예술은 지배계급의 영광을 합리적, 의식적으로 표현하여 시민에게 위용을 과시하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죽음의 공포와 지옥 또는 천도의 사원을 표현하는 데 쓰이기도 하였다.  공업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중세의 대표적인 도시로 영국의 런던을 들 수 있다. 초기 런던의 입지를 보면 하천 및 강어귀에 가까운 구릉에 있었으며, 이는 번영의 큰 요인이 되었다. 선사시대의 런던은 침략에 대비하여 현재 런던시의 입지 선정과 반대로 늪지로부터 떨어진 높은 언덕 위에 있었었다. 그 후 로마인의 정복 후 동쪽의 수로와 북쪽의 도로를 연결하는 도장이자 무역 거점으로 런던을 건설하게 되었다. 따라서 런던시의 위치는 처음에는 피난소로, 그 후에는 교통 중심지로서 기능을 갖게 되었다. 또한 도로의 입지적 요건은 무역이 국지적 규모로부터 지역적, 나아가서는 세계적 규모로 신장함에 따라 도시의 기능을 확립하고 적응하여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출처, 노춘희 김일태 공저, 도시학 개론(개정판),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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