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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한국의 도시 발달 2편

by find-memo 2026. 1. 19.

한국의 도시 발달, 근대 이후

 

근대 이후의 도시발달

개항기(1876) 이전까지의 우리나라 도시들은 한성, 개성, 평양이 인구 2만을 넘었을 뿐 대부분이 2만 이하의 소도읍 형태였다. 그러나 개항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도시체계는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특히 일본의 식민지 경제 정책이 우리나라 도시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개항 후 연안 항구도시들이 건설되면서 기존 내륙의 도시들(상주, 충주, 의주 등)은 인구가 감소하는 반면, 함흥, 목포, 통영, 군산, 신의주, 송림, 청진 등의 항구도시가 발달하였다. 이 시기에 부산, 인천, 남포, 원산, 대구 등이 인구 2만 이상의 신흥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서울은 1910년의 국권 피탈과 더불어 조선왕조 통치 중심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그때까지 왕실의 전매권의 보호 아래 있던 '시전'은 이제 새로운 외래 문물의 거래자들과 일반 시민들 상행위의 장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때부터 도시들은 과거의 폐쇄체계에서 개방체계로 전환된 셈이다. 이렇게 되면서부터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모든 국민의 개화 문물의 수신처가 되고, 따라서 박래품과 개화사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신분에 구애됨이 없이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도시는 이제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다종다양한 문물이 집적하는 곳이 되어서 변화와 다양성이 그 생활환경의 특징이 되었다.
1930년대 이후로는 일제가 한국의 병참기지화와 농공 병진 정책의 본격적인 식민지 경영을 수행하였는데, 특히 석탄, 수력 등 산업 동력의 개발과 철도 교통수단의 확장은 이 시기의 도시 발달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는 근대적 산업화에 기초한 도시 발달이 본격화하고, 도시 투자가 확대되어 도시 기반 경제가 정착됨으로써 우리나라 도시체계가 골격을 갖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일제 강점기의 도시화는 한 마디로 식민 정략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는 식민지로부터 자원의 착취, 수탈 및 자국 생산품의 소비시장의 개척 및 나머지 인구의 배출을 목적으로 항구의 개발과 철도의 부설을 최우선으로 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식민 정략은 우리나라의 도시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즉, 새로운 개항이나 기존 개항장의 보강을 통해 식민지 관료를 지원하기 위한 인적, 물적 체계를 갖추어 도시화를 진행하게 했고, 철도부설을 통해 교통의 접근성이 나쁜 전통적 도시들(공주, 상주, 영변, 안동, 원주, 충주 등)을 쇠퇴화시켜 가며 교통의 요지의 도시들의 발전을 촉진했다. 또한 서울, 대구, 전주, 광주, 함흥 등과 같은 지방정부 소재지는 기존 한국인 시가지에 종속된 일본인 시가지를 형성하면서, 각종 관서, 상가, 편익 시설 등을 일인가에 유리하게 설치함으로써 일인가가 우월해지게 만드는 시책을 썼다.

우리나라 근대 이후 도시 발달의 제3기는 해방 후부터 경제개발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60년대 이전까지이다. 이 기간에 1950년 625 전쟁이나 북한에서 월남한 피난민이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전주 등에 정착하였고, 그 후 전후 복구작업과 산업철도의 발달에 힘입어 관동 지역에 광공업과 관련된 도시 발전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의 도시 발달은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실행으로 국가 산업구조가 공업화로 전환되면서, 공업과 관련된 도시들이 국가 도시화를 선도하였다. 제조업은 기존의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하면서, 동촌의 인구를 흡인하고, 수출산업의 육성으로 울산, 여수, 안산, 창원, 구미 등의 신산업도시가 육성되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도농 간 경제적 격차에 의해 인구의 이촌향도 현상이 뚜렷해졌고, 특히 제조업의 수도권 집중에 따라 전국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로 인해 수도권의 인구집중으로 인한 종주도시와 현상, 거대도시의 성장으로 인한 위성도시와 대도시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근대적 의미의 도시계획이 시작된 것은 불행히도 일제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조선시가지계획령(1934)에서 출발한다. 일제 강점기의 경성부(서울)는 1920년에 최초로 도시계획안이 발표되었는데, 이는 1930년부터 1959년까지 30년의 장기 계획이었다. 이를 토대로 1936년에 수정된 계획안은 1965년을 목표연도로 계획인구를 110만으로 하고 있었으며, 조선시가지계획령이 시행되면서 지역지구제(zoning) 등의 근대 도시계획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가지계획령은 현재의 건축법,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도시개발법에 담겨 있는 내용과 유사한 건축제도, 토지이용계획, 가로망 계획 등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는 1962년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이 분리, 제정될 때까지 거의 30여 년간 우리나라 도시계획의 기본 법령이 되었다. 해방이 되고 서울시는 1949년 '서울 도시 기본계획' 등을 마련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도시계획이 수립된 것은 1960년대에 도시 개발 관계 법령이 정비된 후 1970년대 들어서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최근 우리나라 도시계획의 접근방식에 관해 살펴보면, 1934년 조선 신시가지계획령 이후 60년대 초반까지는 지역지구제와 도시기반시설(urban infrastructure)에 중점을 두어 토목, 건축공학을 기초로 능률성, 합리성을 추구하는 공학적 접근이 중심이 되었으며, 1960년대 중반부터는 도시의 사회경제적 현상에까지 폭을 확대하여 경제적 능률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한 종합계획(comprehensive planning)의 성격을 나타내어 과정적 접근방식이 드러났다. 1981년 도시설계 제도의 법적 채택으로 쾌적성에 기준을 두고, 도시의 물리적 구조와 환경 자체가 궁극적 가치로 구현되는 설계적 접근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나라의 도시계획은 이상의 세 가지 부분 문화가 공존하는 형태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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