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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한국의 도시 발달 1편

by find-memo 2026. 1. 18.

근대 이전의 도시 발달

한국에 있어서 고대의 촌락 공간은 어떤 형태의 것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그러나 고대도시의 형성은 왕권의 성립과 그 통치력을 위한 공간 조직화의 과정이라는 이론을 우리의 나라 경우에도 적용해 본다면 삼국유사에 단군이 평양성에 도읍을 정했다는 것이 도시에 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이다. 후세에 기록된 역사에 있어서 단군조선에 관한 이야기에는 다분히 신화적인 요소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 무렵에 단군이라는 통치자들이 있었고, 그 통치자들이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중심지로서의 도읍을 정했으리라는 것이다. 대체로 기원전 2천3백 년에서 2천5백 년쯤 되어서 한국에서도 그 문명 발달사의 관점으로 보아서 왕권의 성립과 그 지배력의 행사를 위한 거점으로서의 도시가 생겼을 것으로 본다.(노춘희, 1987:31~32)
평양성은 역사적 기록으로는 단군조선 이후 이른바 기자조선 위만조선까지도 국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후세의 유적 발굴로 평양성이 도시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기는 장수왕 이후 고구려의 도읍으로서 이다. 이때부터 고구려의 평양성, 신라의 도읍인 경주, 그리고 백제의 한성, 웅진 및 사비 등도 도시적 촌락 형태와 사회, 경제조직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이런 고대 도시들도 신라의 경주를 제외하고는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도시들처럼 강에 인접해 있었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토양의 비옥도와 강에 의한 물자의 수송과 집산이 편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들 고대도시 가운데서도 그 내부구조나 촌락 형태에 관해서 우리가 오늘날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은 물론 신라의 도읍이었던 경주이다. 최근에 특히 신라 문화의 전반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인해서 경주의 많은 유적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그 도시적 공간구성에 관하여 적어도 대체적인 윤곽은 밝혀지고 있다. 삼국시대의 도성들은 처음에는 왕궁 중심으로 한 궁 내부가 대부분이었으나, 후기에는 중국식을 모방하여 주거 촌락까지도 둘러싸는 나성의 축조가 행하여졌다. 즉 삼국은 5세기를 전후하여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의 강화로 왕권이 강화됨에 따라 관가를 중심으로 이들에게 예속된 노예와 상공인들을 방어하기 위한 성곽이 둘러싸이고 군대가 주둔하여 정치 행정 중심의 도시가 형성되었다.(대한 국토. 도시계획학회. 1998 : 65)

삼국시대에도 이상과 같은 수도 이외에도 지방행정 중심지로서의 소규모 도읍들이 있었을 것 같지만 역사적 자료의 불충분 때문에 자세한 것은 알기 힘들다.

고려 왕조에 있어서 개경, 즉 지금의 개성에 또한 상당한 규모의 도시적 촌락 공간이 형성되었음은 우리가 다 잘 아는 사실이다. 고려 태조 왕건은 당의 군현제도를 도입해 전국을 12목으로 구분하였다가 후에 5도 호부 8목으로 개편하여 군사적 거점을 겸한 지방행정의 중심지인 도시를 설치하였고, 14세기 초에는 수도인 개경 외에도 3경을 두었다. 개경에는 경시를 두어 농업기술과 수공업이 발달하였다. 지방 도시와 교통의 요지에는 소규모 상설 시장으로 추정되는 향시가 있었고, 이를 중심으로 전업적인 시장 상인이 다수 등장하여 시장의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시장의 발달은 도시형성을 촉진했다. (권용우 외. 1998:32)
조선왕조(1394~1909)는 도읍을 한양(서울)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도시 발달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아래 부, 목, 대도호부, 군, 현 등과 같은 기초 지방 행정단위를 두었다. 초기의 도시들은 주로 행정의 중심지로 발달하여 전산업적(pre-industrial) 소비도시였으나, 점차 교통과 시장 기능이 더해져 상공업 중심의 도시 발달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도시적 촌락 공간에 관해서는 그 이전에 비해서 훨씬 많은 것이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때에 와서는 특히 축성 기술이 많은 발전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지역의 축성 기록과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도시들의 흔적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자료가 비교적 많이 있다. 이런 축성의 기록과 유적은 지금의 서울을 위시하여 평양, 수원, 전주, 대구, 통영, 제주 등지에 있으며, 이들 중에 서울을 제외한 지역들은 지방행정의 중심지로서 도시적 공간구조와 사회, 경제조직을 가지고 있었던 곳들이다. 서울은 물론 조선왕조의 국가적 수도로서 상당한 규모의 도시였고, 오늘날 서울의 도시공간구조도 상당한 정도는 6백여 년 전에 이미 짜인 틀에 의해서 제약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도시 발달, 수원 화성


고대, 즉 삼국시대의 도시계획은 도성을 축조하는 것으로서 왕궁을 중심으로 주변에 나성을 쌓는 것에 불과하였고. 고려시대에도 풍수지리학에 근거하여 왕궁을 짓고 시가지를 부방(상업지역), 리(주거지역) 등으로 구분하는 정도였다. 다만 조선조 정조 18년에 계획된 화성(수원)의 경우는 성곽뿐만 아니라 입지 선정에서 도시설계(urban design)에 이르기까지 거의 완벽한 계획의 흔적을 보여. 학자에 따라서는 세계 최초의 계획도시라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상과 같은 지극히 개략적인 유곽으로 보아 우리나라도 도시 문명의 역사는 기록된 역사보다는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우리의 경우에도 '도시의 흥망사 곧 '국가의 흥망사 우리 문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또는 중세까지의 도시들은 오늘날 우리들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도시들과는 아주 판이한 생활환경이었다. 따라서 도시의 발달사에는 서양에서는 산업혁명을 전후하여, 그리고 우리의 경우에는 조선왕조의 붕괴를 전후하여서 하나의 단절이 있었다고 하여도 좋다.

 

도시의 발달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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